[2026.10.04] 화성학 고급 5가지 - 피치클래스 셋 이론, 무조음악을 숫자로 읽는 법 🎵

안녕하세요, 우리들의 주파수 구독자 여러분! 🎵 지금까지 다뤄온 화성학은 대부분 장조나 단조라는 “조성(Key)“을 전제로 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쇤베르크 같은 작곡가들은 아예 조성을 버린 **무조음악(Atonal Music)**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으뜸음도 없고 “이 코드가 저 코드로 해결된다”는 개념도 없는 음악을, 대체 무슨 기준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 답으로 등장한 피치클래스 셋 이론(Pitch-Class Set Theory), 그리고 이걸 체계화한 **포르테 넘버(Forte Number)**를 알아보겠습니다. 숫자가 좀 나오지만, 비유로 풀면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 1. 피치클래스란 무엇인가 - 음을 시계 숫자로 바꿔보기

**피치클래스(Pitch Class)**는 “옥타브 차이를 무시하고 음 이름만 본다”는 개념입니다. 4옥타브 도(C4)든 5옥타브 도(C5)든, 심지어 1옥타브 도(C1)든 전부 그냥 “도”로 취급하는 것이죠.

비유하자면 12시간제 시계와 똑같습니다. 오전 3시든 오후 3시든 자정을 넘긴 다음날 3시든, 시계 숫자판 위에서는 전부 “3”이라는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음악에서도 똑같이 도=0, 도#=1, 레=2… 이런 식으로 반음계 12개 음에 0부터 11까지 숫자를 매깁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옥타브에서 연주되든 “C-E-G 코드”는 그냥 {0, 4, 7}이라는 숫자 묶음이 됩니다.

이 숫자화 덕분에 조성이 없는 음악에서도 “이 화음과 저 화음이 사실은 같은 모양이다”라는 걸 수학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 2. 노멀폼과 전치 - 같은 블록을 자리만 옮기기

같은 숫자 집합이라도 어디서부터 읽느냐에 따라 순서가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촘촘하게 모인 순서로 다시 정렬한 것을 **노멀폼(Normal Form)**이라 부릅니다.

비유하면 테트리스 블록과 비슷합니다. 블록을 화면 어디에 놓든(왼쪽, 오른쪽, 가운데) 모양 자체는 똑같은 “L자 블록”인 것처럼, 음 묶음도 전체를 몇 반음 올리거나 내려도(이걸 전치, Transposition라고 합니다) 내부 간격 구조가 같다면 “같은 셋”으로 취급합니다. {0,4,7}을 2만큼 전치하면 {2,6,9}가 되는데, 둘 다 사실은 “장3화음”이라는 같은 블록 모양을 자리만 옮긴 것입니다.

  • 벨라 버르토크, 「현악 4중주 4번」 - 특정 음정 간격(특히 증4도·단2도)으로 이루어진 셋을 곡 전체에서 위치만 바꿔가며 반복 사용해, 조성 없이도 통일감을 만들어냅니다.

🔖 3. 프라임폼과 포르테 넘버 - 화음에 매기는 지문 번호

노멀폼을 0에서 시작하도록 가장 작게 압축한 최종 형태를 **프라임폼(Prime Form)**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미국 음악학자 **앨런 포르테(Allen Forte)**는 1973년 저서에서 3개부터 9개 음까지 가능한 모든 프라임폼에 “3-11”, “4-19”, “6-Z44” 같은 고유 번호, 즉 포르테 넘버를 매겼습니다.

비유하자면 지문 등록번호나 생선 초밥집의 메뉴 번호와 비슷합니다. 재료(음)가 몇 개인지, 서로 어떤 간격으로 배치됐는지만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화음 모양을 고유 번호 하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장3화음과 단3화음은 둘 다 “3-11”이라는 같은 포르테 넘버를 공유합니다. 소리의 “밝고 어두움”은 다르지만, 음정 간격의 추상적인 뼈대는 똑같기 때문입니다.

  • 아르놀트 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 -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음정 집합(셋)들을 분석하면, 조성 없이도 동기가 곡 전체를 관통하며 통일성을 만드는 구조가 드러납니다.

🪞 4. 인버전과 집합류 - 거울에 비친 화음, 왼손과 오른손 장갑

전치 외에 또 하나 “같은 모양”으로 쳐주는 조작이 있습니다. 바로 인버전(Inversion, 보형), 즉 음정 간격을 상하로 뒤집는 것입니다. {0,1,4}를 뒤집으면 {0,3,4}가 되는 식입니다.

비유하면 왼손 장갑과 오른손 장갑입니다. 재질도 치수도 완전히 똑같은데,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바뀌어 있을 뿐이죠. 전치와 인버전까지 같은 것으로 묶은 분류 단위를 **집합류(Set Class)**라고 부릅니다. 즉 포르테 넘버 하나는 “크기와 모양은 같지만 위치나 거울 방향은 다를 수 있는” 화음들의 그룹 전체를 대표합니다.

  • 안톤 베베른, 「교향곡 Op. 21」 - 음렬(12음 기법의 음 순서)을 역행·전위(인버전)시켜가며 곡을 구성하는데, 이 전위 관계가 바로 피치클래스 셋 이론의 인버전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 5. 인터벌 벡터와 Z-관계 - 모양은 다른데 같은 ‘맛’이 나는 화음

각 셋이 내부적으로 어떤 음정 간격(단2도, 장2도, 단3도…)을 몇 번씩 포함하는지 센 것을 **인터벌 벡터(Interval Vector)**라고 합니다. 일종의 “성분표”인 셈이죠.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프라임폼(다른 모양)인데도 인터벌 벡터, 즉 성분표가 완전히 똑같은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관계를 Z-관계라 부릅니다. 비유하자면 재료 구성은 완전히 같은데 조리법(조립 순서)이 달라서 다른 요리가 나온 것과 같습니다. 영양성분표(인터벌 벡터)는 똑같이 찍히지만, 혀로 느끼는 맛(실제 음향적 인상)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 - ‘봄의 전조(Augurs of Spring)’ 화음으로 유명한 Eb7과 Fb 장3화음의 병치는, 집합론으로 분석하면 특정 8음 셋의 반복으로 설명되며 이 곡 전체의 리듬적 폭력성을 지탱하는 구조로 읽힙니다.
  • 재즈의 “아웃사이드” 보이싱 - 조성 재즈에서도 연주자들이 일부러 집합류가 다른 화음을 겹쳐 긴장감 있는 사운드를 만들 때, 이 이론의 틀로 “어떤 집합이 왜 낯설게 들리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요약

  • 피치클래스는 옥타브를 무시하고 음을 0~11 숫자로 바꿔, 조성 없는 음악도 수학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합니다.
  • 노멀폼과 전치는 화음을 가장 촘촘한 순서로 정리하고 위치만 옮기는 조작으로, 같은 모양의 블록을 식별합니다.
  • 프라임폼과 포르테 넘버는 모든 화음 모양에 고유 번호를 매긴 “지문 등록 시스템”입니다(앨런 포르테, 1973).
  • 인버전과 집합류는 거울처럼 좌우가 뒤집힌 화음까지 같은 그룹으로 묶는 더 넓은 분류입니다.
  • 인터벌 벡터와 Z-관계는 모양은 다르지만 음정 성분표가 같은 화음들의 숨은 연관성을 보여주며, 쇤베르크·베베른·버르토크·스트라빈스키 같은 20세기 무조음악을 분석하는 핵심 도구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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