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새벽] 제142화 - 이음

제142화 「이음」

1. 이음매

열이틀. 세워 놓은 발사체는 이제 혼자 서 있지 않았다. 발사대 탑에서 뻗어 나온 케이블과 배관이 밑동부터 허리까지 발사체를 붙들었고, 어제까지 저마다 따로 놀던 상자 12개가 오늘 처음으로 한 줄로 이어졌다.

명호는 통합 시험의 첫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개별 시험에서 12상자는 전부 초록이었다. 하나하나 켜서 값을 재고, 흔들고, 식히고, 데워도 흠이 없었다. 그런데 선으로 이어 붙이자 3번 계통의 센서 값이 아주 느리게 떨렸다. 경보가 울릴 만큼은 아니었다. 눈금 맨 아래에서 실낱같이, 숨 쉬듯이.

“상자는 다 통과한 건데요.”

관제사가 화면을 짚었다.

“따로 켰을 땐 이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붙이니까 생겼어요.”

“따로 켰으니 없었지.”

팀장이 옆으로 왔다.

“상자 2개를 선으로 이으면 신호선만 이어지는 게 아니야. 두 상자가 각자 물고 있던 땅도 이어져. 그런데 이쪽이 밟고 선 땅이랑 저쪽이 밟고 선 땅이 아주 조금 높이가 달라. 그 차이가 갈 데가 없으면, 방금 새로 이은 신호선을 타고 흘러. 그게 자네가 보는 떨림이야.”

접지 루프였다. 두 접지 사이의 미세한 전위차가 신호선을 한 바퀴 돌며 값을 흔든 것이다. 명호가 낮게 말했다.

“상자 열둘은 아무 죄가 없네요.”

“죄가 없지. 따로따로는 다 멀쩡한데 이으면 문제가 생기는 건, 이음매가 새 부품이라서야. 상자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그 사이의 이음매는 오늘 처음 만들어져. 오늘 처음 생긴 부품이 오늘 처음 시험받는 거지. 이 일에서 제일 늦게 만들어지고 제일 먼저 새는 게 이음매야.”

명호는 개별 시험의 한계를 새삼 곱씹었다. 상자 하나를 시험할 때는 그 상자의 접지, 그 상자의 전원, 그 상자만의 깨끗한 기준선을 붙여 준다. 실험실에서는 모든 것이 그 상자에 맞춰져 있으니 흠이 드러날 자리가 없다. 문제는 언제나 상자와 상자가 만나는 데서, 서로 다른 기준선이 처음으로 마주 서는 순간에 태어난다. 그래서 통합 시험이 따로 있는 것이었다. 부품이 좋은지 보려는 것이 아니라, 좋은 부품들이 서로를 견디는지 보려는 것.

“그럼 개별 시험은 왜 그렇게 오래 했어요.”

젊은 관제사가 물었다.

“개별에서 잡을 걸 통합까지 끌고 오면 어디서 난 건지 못 찾으니까. 상자 하나가 나쁘면 그 상자만 보면 돼. 그런데 상자는 다 좋은데 이으니 새면, 범인은 상자가 아니라 그 사이야. 눈에 안 보이는 데를 뒤져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개별을 깨끗이 끝내 놔야, 통합에서 뜨는 건 전부 이음매 문제라고 믿을 수 있어.”

해법은 땅을 여러 군데 밟게 두지 않는 것이었다. 3번 계통의 접지를 한 점으로만 모아 내리고, 신호는 두 선의 차이만 읽어 공통으로 실린 잡음은 버리게 했다. 관제사가 접지선을 한 점으로 되물리자, 눈금 아래의 실낱같던 떨림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명호는 그동안 사람에게 판단을 하나씩 넘겨 왔다. 이제 보니 넘긴 자리마다 이음매가 생겨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상자와 상자 사이도, 가장 나중에 이어지고 가장 먼저 우는 곳이 거기였다.

2. 서로요

이 방에서 여는 마지막 회차였다. 소율은 녹음기를 두지 않기로 했다. 남으면 오지 않는다고, 많을 때 그만두는 거라고 스스로 정한 밤이었다.

리허설에서 세션이 물었다.

“클릭 낄까요? 마지막인데 안 흔들리게.”

“오늘은 빼요.”

소율이 말했다.

“그럼 누가 박을 잡아요?”

건반이 손을 멈췄다.

“서로요.”

클릭이 없으면 사람은 저마다 조금씩 빨라지고 느려진다. 혼자 부르면 그 흔들림이 그대로 남아 곡이 밀리거나 처진다. 그런데 셋이 서로의 소리를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건반이 반 박 앞서면 소율이 당겨지고, 소율이 반 박 처지면 기타가 기다렸다. 중앙에서 박을 때려 주는 것이 없어도,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끌어당겨 하나의 박으로 모였다. 지휘자 없는 합주가 흩어지지 않는 건 각자 정확해서가 아니라 서로 듣고 있어서다. 반딧불이 수백 마리가 누구의 신호도 없이 한꺼번에 깜빡이듯이, 벽에 걸린 추시계 여러 개가 며칠 지나면 저절로 같은 쪽으로 흔들리듯이.

“근데 그거 위험하지 않아요?”

기타가 물었다.

“한 명이 크게 밀리면 다 같이 밀려서 곡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

“그건 서로 안 들을 때 그래요.”

소율이 고개를 저었다.

“한 명이 밀렸는데 나머지가 귀를 닫고 제 박만 지키면, 그 사람은 혼자 멀어져요. 근데 다 같이 들으면 밀린 사람 쪽으로 아주 조금씩만 당겨져요. 셋이 조금씩 나눠 지니까 아무도 크게 안 흔들려요. 클릭은 하나가 틀리면 그 하나만 튀는데, 서로 들으면 틀린 게 셋한테 얇게 퍼져서 오히려 안 티 나요.”

“흔들려도 돼요. 같이 흔들리면 하나예요.”

소율이 셋을 둘러보며 말했다.

“각자 안 흔들리려고 버티면 오히려 어긋나요. 상대가 흔들리는 쪽으로 같이 기울면 붙어요.”

밤, 200석이 다 찼다. 마지막 곡의 후렴 직전, 여러 밤을 매만져 온 그 여린 반 박에서 셋은 클릭 없이 같이 물러섰다가 같이 물렸다. 흔들렸지만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다. 200명이 함께 숨을 멈췄고, 소율은 이 방에서 처음으로 제 박이 아니라 셋의 박으로 노래했다.

노래가 끝나고 불이 반쯤 올라올 때, 소율은 아쉽지 않았다. 남기지 않기로 한 것이 오늘의 소리를 오늘 것으로 만들었다. 이 방에 온 200명 안에서만 그 노래는 이어질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세션들이 악기를 챙길 때, 건반이 물었다.

“진짜 하나도 안 남겨요? 오늘 소리 좋았는데.”

“남기면 다음에 그걸 이기려고 해요.”

소율이 마이크 선을 감았다.

“그리고 오늘 좋았던 건 우리 셋이 서로 들어서 좋았던 거지, 소리 하나가 좋았던 게 아니에요. 그건 녹음기에 안 담겨요. 담기는 건 결과고, 우리가 한 건 서로 맞추는 일이잖아요. 그건 그 자리에만 있어요.”

이 방은 잔향이 짧아 소리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곧게 건너갔다. 그래서 셋의 미세한 밀고 당김이 흐려지지 않고 그대로 들렸고, 서로를 그렇게 또렷이 들을 수 있는 방이라 이 편곡이 살았다. 소율은 문을 잠그기 전에 빈 객석을 한 번 돌아보았다. 다음 달에 큰 홀에서 400장을 팔 수도 있었지만, 거기서는 이 미세한 이음이 잔향에 먹혀 사라질 것이었다. 남기지 않기로 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방이었다.

3. 나를 거치지 않는 길

동현은 오랫동안 3층과 5층과 6층 사이의 서류를 제 손으로 받아 옮겨 왔다. 자기를 거치면 빨랐다. 어긋난 칸도 그가 짚어 고쳐 보냈으니 되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3층 담당자가 6층에 보낼 서류를 또 동현의 책상에 올렸다.

“이거 왜 나한테 줘요? 받을 사람은 6층인데.”

“과장님 거치면 확실하잖아요. 바로 넣으면 또 반려될까 봐.”

동현은 서류를 받는 대신, 3층 담당자와 6층 담당자를 한자리에 세웠다. 둘은 서로 얼굴은 알아도 일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어색했고, 부서 코드 하나를 두고 서로 눈치를 보느라 느렸다.

“과장님 거치는 게 빠른데요.”

후배가 곁에서 작게 말했다.

“빠르지.”

동현이 두 사람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다들 나를 거치게 해 놓으면, 나 하나 빠지는 날엔 아무것도 안 가. 나는 길목이 되고, 길목은 막히거나 없어지면 뒤가 통째로 끊겨. 나를 거쳐야 빠른 건 내가 있는 날만이야.”

한 사람에게 길을 다 몰아 두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날 모든 흐름이 함께 멈춘다. 게다가 모두가 한 사람을 거치면 그 사람 앞에 줄이 선다. 빠른 것 같아도 실은 저마다 동현의 손이 비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쌓이고 있었다. 길목 하나로 모으면 그 길목의 넓이가 전체의 넓이가 되어 버린다.

“대신 이렇게 두면요?”

후배가 두 담당자를 눈으로 가리켰다.

“처음 며칠은 더뎌. 서로 얼굴 익히고, 어느 칸을 어떻게 채우는지 손발 맞추는 데 시간이 걸려. 그런데 그 며칠만 지나면 나 없이도 돌아가. 나 하나가 빠져도 10갈래 중에 아홉이 살아 있어. 느리게 시작해서 안 끊기는 길이, 빠르게 시작해서 한 번에 끊기는 길보다 나아.”

대신 부서와 부서를 직접 이어 두면, 처음엔 삐걱대도 누구 하나 빠져도 남은 길로 돌아간다. 오후가 되자 3층과 6층은 동현을 부르지 않고 저희끼리 코드를 맞춰 서류를 넘겼다. 반려는 없었다. 동현의 책상은 오랜만에 오전 내내 비어 있었고, 그는 그 빈 책상이 일이 줄어든 게 아니라 길이 늘어난 표시라는 걸 알았다.

손수건 위에는 이제 명찰이 여럿이었다. 동현은 명찰과 명찰 사이를 눈으로 이어 보았다. 그가 할 일은 그 사이를 자기가 잇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서로를 잇게 두는 것이었다.

“오늘 한 일은, 나를 거치지 않는 길을 낸 거야.”

흐름표 끝 칸에 그는 그렇게 적었다.

4. 다음에요

저녁 무렵, 문 앞에 현수가 서 있었다. 5년 만에 아들이 제 발로 아버지의 집 앞까지 온 밤이었다. 손에는 약 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거… 지난번에 같이 받은 거요. 아버지 것.”

현수가 봉지를 내밀었다.

진우가 받았다. 봉지를 건네고 받는 사이에 손이 잠깐 스쳤다. 5년 동안 아들의 손이 제 손에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 같으면 저녁은 먹었느냐, 길은 안 막혔느냐, 옷이 얇지 않으냐 하고 10줄을 붙였을 것이다. 진우는 반만 꺼냈다.

“저녁, 안 먹었으면…”

“다음에요.”

현수가 말했다. 거절이 아니었다. 다음, 이라는 말이었다.

“그래. 다음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가 돌아서 갔다. 진우는 문을 닫고 서랍을 열어, 5년을 세던 그 종이를 잠깐 보았다. 꺼내지는 않았다. 이제 그 종이는 세는 물건이 아니라 그냥 넣어 둔 물건이었다.

밤, 김지수가 국을 데웠다. 진우가 약 봉지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요, 그러더라고요.”

“그거면 다 된 거예요.”

김지수가 숟가락을 놓으며 웃었다.

“다음이 또 생겼잖아요. 5년 동안 못 버린 그 약 봉지가, 이제는 오가는 물건이 됐네요. 못 버리던 걸 주고받게 됐으면 이어진 거예요.”

“근데 반만 말했어요.”

진우가 국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저녁 먹고 가라고, 자고 가라고, 옷이 얇다고… 예전 같으면 10마디는 붙였을 텐데 반만 나오고 목에 걸리더라고요. 그게 아직도 서먹해서 그런 건지, 제가 늙어서 그런 건지.”

“반만 하신 게 잘하신 거예요.”

김지수가 말했다.

“5년을 건너온 사이는 한 번에 다 이으려고 하면 또 끊어져요. 한 오라기씩, 견딜 만큼만 걸치는 거예요. 오늘 손이 스쳤고, 다음에라는 말을 받았잖아요. 그거 두 오라기예요. 다음에 또 두 오라기 걸치면 돼요. 10마디를 한 번에 하려다가 아드님이 물러서는 것보다, 2마디씩 10번 걸치는 게 더 질기게 이어져요.”

진우는 서랍 쪽을 한 번 보았다. 5년을 세던 종이는 이제 세는 물건이 아니었지만, 버리지도 않았다. 세는 일은 끝났어도 그 종이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지울 필요는 없었다.

5. 잎이 드는 이유

화분 물주기는 진우의 차례였다. 어제까지 축 처져 있던 잎이, 오늘 아침에는 끝이 조금 들려 있었다.

“살아났나 봐요.”

진우가 화분을 창가로 조금 당겼다.

“살아난 게 아니라, 이어진 거예요.”

김지수가 잎을 들여다보았다.

“옮겨 심을 때 잔뿌리가 끊겨서 며칠 물을 못 올렸잖아요. 흙엔 물이 있는데 뿌리랑 흙 사이에 틈이 벌어져서 물이 못 건너간 거예요. 그래서 잎이 처졌던 거고요.”

“그런데 오늘은 왜…”

“새 실뿌리가 났거든요. 가느다란 뿌리털이 흙 알갱이 하나하나에 달라붙어서 물길을 다시 이은 거예요. 밑에서 이어지고 나니까 물이 다시 올라오고, 그제야 잎이 드는 거죠. 이걸 활착이라고 해요. 뿌리가 새 흙에 자리를 잡는 거요.”

“물을 많이 주면 빨리 낫지 않아요?”

진우가 물뿌리개를 기울이려다 멈췄다.

“지금은 반대예요. 물길을 잇는 건 뿌리인데, 물을 왈칵 부으면 아직 자리 못 잡은 뿌리가 숨을 못 쉬어요. 흙 틈이 물로 다 막히면 뿌리는 물에 잠긴 채로 마르는 거예요. 이을 시간을 줘야 해요. 물은 조금, 볕은 약하게, 손은 대지 않고요.”

진우가 물뿌리개를 조금만 기울였다. 이어지는 중인 뿌리를 흔들지 않으려면 물은 적게, 흙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옆에 심어 둔 씨앗 둘은 아직 흙 위로 아무것도 내밀지 않았다.

“얘네는 왜 안 나와요?”

“뿌리가 먼저 내려가고 있어서요. 눈에 보이는 싹은 밑에서 다 이은 다음에 올라와요. 잎이 드는 것도, 싹이 나는 것도, 보이는 건 다 나중이에요. 이어지는 건 안 보이는 데서 먼저 끝나 있어요.”

진우는 잠깐 손을 멈췄다. 문 앞에서 아들이 한 그 한마디도, 오늘 처음 이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이미 이어진 뒤에 겨우 잎처럼 든 말인지도 몰랐다. 지난 스무 날 넘게 날을 세는 동안,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지만 흙 밑에서는 실뿌리가 하나씩 뻗고 있었던 것이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김지수가 물뿌리개를 받아 창턱에 놓았다.

“활착은 재촉한다고 빨라지지 않아요. 뿌리가 흙을 붙드는 속도는 뿌리가 정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흔들지 않고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잎이 들면, 그건 밑에서 이미 다 됐다는 신호고요.”

진우는 조금 든 잎을 오래 보았다. 이 화분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지지대에 기대 겨우 서 있었는데, 이제는 제 힘으로 서서 뿌리를 새 흙에 이어 가고 있었다. 조급함이 조금 가셨다.

6. 아우름

“오늘은 숫자를 안 늘려.”

ATLAS 통제실에서 팀장이 말했다.

“위상을 맞춰.”

거울은 76장이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한 장씩 붙여 온 셈이었다. 76장이 저마다 빛을 지상의 한 점으로 모으면, 밝기는 딱 76배가 되었다. 각자 켜서 각자 보내는, 더하기의 밝기였다.

“위상이 제각각이면 76배에서 끝나요?”

관제사가 물었다.

“제각각이면 그게 최선이지. 그런데 76장의 파도 마루를 한 점에서 겹치게 위상을 맞추면, 얘네가 한 장의 큰 거울처럼 굴어. 그때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에 가까워져. 흩어진 빛을 하나로 아우르는 거야.”

여러 개의 작은 거울도 위상을 머리카락 굵기 이하로 맞추면 하나의 큰 개구처럼 작동한다. 위상이 어긋나 있으면 빛은 그저 더해지지만, 위상이 맞으면 마루와 마루가 겹쳐 훨씬 세게 한곳에 꽂힌다. 관제사가 76장의 위상을 조금씩 밀고 당겨 맞추자, 지상의 빛 점이 문득 또렷해지고 단단해졌다. 늘어난 것은 거울이 아니라 겹침이었다.

“위상 맞추는 게 그렇게 어려우면, 그냥 제각각 켜서 76배로 쓰면 안 돼요?”

관제사가 손끝으로 눈금을 매만지며 물었다.

“쓸 수 있지. 편하고. 그런데 그건 76개가 각자 사는 거야.”

팀장이 화면의 빛 점을 가리켰다.

“위상을 맞춰 두면 한 장이 흔들려도 나머지가 그 위상을 붙들어 줘서 빛 점이 잘 안 흩어져. 제각각 켜 두면 한 장이 흔들릴 때 그냥 그만큼 어두워지고 말지. 아우른다는 건 밝기만 얻는 게 아니야. 하나가 흔들릴 때 여럿이 그걸 받아 주는 힘까지 같이 얻는 거야.”

“아우른다는 건 많이 모으는 게 아니야.”

팀장이 말했다.

“100장을 아무렇게나 켜는 것보다, 10장을 위상 맞춰 켜는 게 더 밝을 때가 있어.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박자를 맞추는 거지. 흩어진 것들이 같은 박으로 한곳을 비추면, 그게 아우름이야.”

격자 81차, 오차 0.1밀리미터. 누적 송전 1344시간, 56일째였다. 명호의 이음매도, 소율의 서로요도, 동현이 낸 길도, 진우의 다음도 모두 같은 일이었다. 아우름이란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니었다. 흩어진 것들의 박자를 맞춰, 여럿이 하나처럼 한곳을 비추게 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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