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새벽] 제143화 - 기다림

제143화 「기다림」

1. 문이 열리는 시각

엿새. 통합 점검이 끝난 아침이었다. 12상자는 이어진 채로 사흘을 견뎠고, 마지막 항목에 초록불이 들어온 뒤 통제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은 일이 하나뿐이라서였다.

기다리는 일.

명호는 벽에 붙은 시각표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발사 예정 시각 아래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줄의 길이가 겨우 손톱만 했다.

“이게 다입니까.”

명호가 물었다.

“창이 14초라고요.”

“14초야.”

팀장이 시각표 옆에 섰다.

“저 위에 있는 고리는 제 길로 돌고 있고, 우리는 도는 땅 위에 서 있어. 우리가 그 길이 지나가는 자리 밑을 하루에 두 번 스쳐. 그 두 번 중에 각도가 맞는 순간이 14초야. 그때 올리면 그냥 그 길로 붙어. 15초째에 올리면 길이 어긋나.”

“어긋나면 돌리면 되잖습니까.”

젊은 관제사가 말했다.

“돌려 봐. 얼마나 드는지.”

팀장이 화면에 숫자를 띄웠다.

“위에 올라가서 도는 면을 일 도만 틀어도, 여기서 짊어지고 갈 연료가 몇 톤씩 늘어. 십 도면 아예 못 가. 궤도는 높이만 맞춘다고 되는 게 아니야. 어느 쪽으로 도느냐가 더 비싸. 그래서 우리는 빨리 갈 수도 없고 늦게 갈 수도 없어. 문이 열리는 그 시각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해.”

“창이 하루에 두 번 열리면 내일 올리면 되잖습니까.”

관제사가 다시 물었다.

“왜 엿새를 기다립니까.”

“창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니까.”

팀장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각도가 맞아야 하고, 그 시각에 추진제 온도가 잡혀 있어야 하고, 위쪽 바람이 정해진 세기 아래여야 하고, 그날 하늘에 번개를 품은 구름이 없어야 하고, 바다에 나가 있어야 할 배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해. 하나만 어긋나도 그날은 못 가. 이 조건들이 전부 한 자리에서 겹치는 첫 번째 날이 엿새 뒤야.”

명호는 그 목록을 보며, 이 일에서 사람이 정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적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발사체는 사람이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 보낼지는 사람이 정하지 않았다. 땅이 도는 속도와 위쪽 바람과 구름이 정했고, 사람은 그 답을 받아 적을 뿐이었다.

명호는 그 말을 속으로 한 번 더 굴렸다. 지난 두 달 동안 이 팀이 한 일은 전부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치는 일이었다. 값을 재고, 이유를 캐고, 상자를 잇고, 발사체를 세웠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일은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다 만들어 놓고, 하늘이 문을 여는 시각까지 손을 대지 않고 서 있는 일이었다.

“그럼 엿새 동안 뭘 합니까.”

명호가 물었다.

“다 끝났는데요.”

“안 끝났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다가 발사 이틀 전에 손을 대지.”

팀장이 카운트다운 시각표를 손끝으로 짚어 내려갔다.

“여기 봐. 마이너스 4시간에서 50분, 마이너스 20분에서 10분. 시계가 멈추게 돼 있어.”

“고장 났을 때 쓰려고요?”

“아니. 미리 넣어 둔 자리야. 아무 일 없어도 그 시간엔 그냥 서 있어. 사람들이 제일 못 견디는 게 이거야. 멀쩡한데 왜 멈춰 있냐고. 그래서 그 자리를 안 넣어 두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일이 10분 밀리는 순간 다들 10분을 어디서든 빼려고 들어. 점검을 건너뛰거나 확인을 눈으로만 하거나. 이 자리는 그때 쓰라고 있는 거야.”

명호는 그 붉은 칸을 오래 보았다. 일정 밖으로 새는 시간이 아니라 일정 안에 미리 넣어 둔 빈칸이었다. 급할 때 남한테서 빼앗아 오지 않으려고 미리 자기 몫으로 떼어 둔 시간.

“기다림도 항목이네요.”

명호가 말했다.

“제일 늦게 배우는 항목이지.”

팀장이 시각표에서 손을 뗐다.

“빠른 게 이기는 게 아니야. 맞는 시각에 그 자리에 있는 게 이기는 거지. 14초는 짧아 보여도, 엿새를 제대로 기다린 사람한테만 열려.”

2. 생각해 볼게요

진우는 아침부터 문장 하나를 썼다 지웠다 했다.

다음 달 열이렛날이 아내의 기일이었다. 5년 동안 그날은 늘 혼자였다. 혼자 가서 혼자 서 있다가 혼자 내려왔고, 내려오는 길에 아무 데도 들르지 않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5년이었다.

11시가 다 되어 진우는 짧게 보냈다. 다음 달 열이렛날에 네 엄마한테 갈 건데, 같이 갈래.

보내고 나서 진우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30분 뒤에 뒤집었다. 다시 뒤집어 놓고, 다시 뒤집었다.

점심때가 지나도 답이 없었다. 오후에 잠깐 들른 김지수가 그의 손을 보았다. 손이 무릎 위에서 자꾸 주머니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오늘 뭐 보내셨어요?”

김지수가 물었다.

“기일에 같이 가자고요.”

진우가 말했다.

“아침에 보냈는데 아직 아무 말이 없네요.”

“몇 번 다시 보내셨어요?”

“한 번도요.”

진우가 조금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세 번은 더 보냈어요. 밥은 먹었냐, 바쁘냐, 부담이면 안 와도 된다. 그거 안 보내느라 반나절을 다 썼습니다.”

김지수가 웃었다.

“그럼 오늘 하루 일 잘하신 거예요.”

“답이 없는 게 답인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김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빨리 오는 답은 대개 이미 정해져 있던 답이에요. 예도 아니오도, 마음에 굳어 있던 건 3초면 나와요. 오래 걸리는 건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아버님이 오늘 아드님한테 없던 걸 하나 만들라고 시키신 거예요. 그게 반나절 만에 되겠어요?”

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오후 볕이 길게 누워 있었다.

“기다리는 게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인 줄 몰랐습니다.”

한참 뒤에 그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건데 종일 힘이 들어요.”

“아무것도 안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김지수가 말했다.

“세 번 보낼 걸 안 보내신 거예요. 그건 안 한 게 아니라 참으신 거고요. 참는 건 원래 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3. 손을 놓아 두는 열흘

공연이 끝난 지 열흘이 되었다. 소율은 그 열흘 동안 악기를 한 번도 잡지 않았다.

“괜찮아요?”

연습실에 들른 세션이 물었다.

“이러다 감 떨어져요. 저는 사흘만 쉬어도 손가락이 남의 손 같던데.”

“저는 반대던데요.”

소율이 창턱에 걸터앉은 채 말했다.

“몰아서 며칠 붙잡고 있으면 그때는 되는데 한 달 뒤에 없어요. 근데 띄엄띄엄 하면 그때는 서툰데 반년 뒤에도 남아 있어요. 이상하죠.”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손으로 익힌 것은 연습을 끝낸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때는 아직 젖은 시멘트 같은 상태여서, 연습이 끝나고 몇 시간, 특히 잠든 밤 사이에 안에서 굳는다. 굳는 동안 새것을 계속 부어 넣으면 앞의 것이 채 굳기 전에 밀려난다. 그래서 몰아친 연습은 그날 제일 잘 되고 한 달 뒤에 제일 먼저 사라진다. 사이를 비워 두고 다시 돌아오면, 잊힐 뻔한 것을 다시 끌어올리느라 더 깊은 자리에 놓인다.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한 며칠 뒤에 오히려 더 나아져 있는 일도 있다. 손이 쉬는 동안에도 몸은 조용히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새 곡은 써야죠.”

세션이 말했다.

“공연 끝나고 바로 앉는 사람이 제일 많던데.”

“앉아 봤어요. 이틀째에.”

소율이 말했다.

“근데 나오는 게 다 그 방 소리더라고요. 그 방에서 통했던 걸 또 하고 있었어요. 지난 곡을 또 쓰는 거예요, 제목만 바꿔서.”

그래서 손을 놓아 두었다. 잘된 것도 붙잡지 않았다.

“그럼 열흘 동안 뭐 하셨어요.”

세션이 물었다.

“들었어요.”

소율이 말했다.

“남의 노래 말고요. 아침에 위층에서 의자 끄는 소리, 버스가 정류장에서 숨 빼는 소리, 그런 거요. 노래를 만들려고 들으면 다 재료로 보이는데, 안 만들려고 들으니까 그냥 소리로 들리더라고요.”

“그게 도움이 돼요?”

“몰라요. 근데 열흘 동안 제 노래를 한 번도 안 들었어요. 그게 오랜만이었어요.”

그날 밤 소율은 아무 생각 없이 건반 앞에 앉았다. 열흘 만이었다. 오른손이 저 혼자 2마디를 짚었다. 그 방의 소리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소율은 그 2마디를 세 번 치고 손을 내렸다. 더 이어 붙이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익은 만큼이었다.

4. 2주만

부장이 통계표를 들고 동현의 자리로 왔다.

“이번 달 처리 건수가 지난달보다 18퍼센트 떨어졌어.”

부장이 종이를 책상에 놓았다.

“부서끼리 직접 하게 한 뒤로야. 자네가 다시 받는 게 낫지 않겠나.”

동현은 종이를 한참 보았다. 숫자는 틀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모든 서류가 동현의 책상을 지나갔고, 동현은 10년치 요령으로 그것을 빠르게 흘려보냈다. 지금 3층과 6층은 서로 처음 서류를 주고받는 중이었고, 당연히 서툴렀다.

새로 바꾼 것은 반드시 한 번 내려앉는다. 옛 방식은 숙련되어 있고 새 방식은 아직 몸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꾼 직후의 숫자는 언제나 나빠지고, 바로 그 지점에서 대부분 되돌린다. 되돌리면 숫자는 그날로 회복되지만, 다시는 그 골을 못 건넌다. 골을 건너 본 곳만 예전보다 위로 올라간다.

“2주만 기다려 주십시오.”

동현이 말했다.

“2주 뒤에 더 떨어지면?”

“그러면 제가 도로 받겠습니다.”

동현이 서랍에서 다른 종이를 꺼내 옆에 놓았다.

“대신 이것도 같이 봐 주십시오.”

되묻는 횟수였다. 서류 한 건을 처리하면서 담당자가 다른 부서에 다시 물어본 횟수. 지난달에는 한 건당 평균 두 번 하고도 조금 더였다. 이번 달은 한 번이 채 안 되었다.

“건수는 떨어졌는데 되묻는 게 반으로 줄었어?”

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엔 저한테 묻고, 제가 저쪽에 묻고, 저쪽이 저한테 답하고, 제가 이쪽에 답했습니다.”

동현이 말했다.

“한 번 묻는 데 네 번이 오갔어요. 지금은 그냥 저쪽에 바로 묻습니다. 느려 보이는 건 사람들이 아직 누구한테 물어야 하는지 외우는 중이라서 그렇습니다. 그건 2주면 외워집니다. 그런데 저를 거치던 길은 10년 동안 아무도 못 외웠습니다.”

부장이 2장을 나란히 놓고 한참 보더니 종이를 접었다.

“2주.”

그날 저녁 동현은 흐름표 맨 아래 칸에 적었다. 오늘 한 일, 기다림. 그리고 그 옆에 하나 더 적었다. 숫자가 내려앉은 걸 보고도 손을 안 댐.

서랍 속 손수건 위에는 명찰 4장이 놓여 있었다. 동현은 그 옆을 오늘도 비워 두었다.

5. 82차 정렬 — 메타 79단계 ‘기다림’

77장이 된 거울이 지구 그림자를 빠져나온 직후였다.

관제실 화면에서 격자 값이 미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 위상을 맞춰 하나의 개구처럼 만들어 놓은 고리가, 오늘 아침 그림자에서 나오자마자 조금씩 어긋나는 중이었다.

“값이 나옵니다. 지금 맞출까요?”

관제사가 손을 조작반에 얹었다.

“손 내려.”

팀장이 말했다.

“지금 나오는 그 값은 거울 값이 아니야. 온도 값이야.”

그림자 안에서 거울은 뒷면까지 고르게 식는다. 그러다 볕으로 나오면 햇빛을 받는 앞면만 먼저 데워지고 뒷면은 아직 차갑다. 앞뒤 온도가 다르면 금속은 아주 조금씩 다르게 늘어나서 판이 휜다. 밀리미터의 몇십 분의 일이지만, 이 고리에서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휨은 가만히 두면 한 시간 안에 저절로 멎는다. 앞뒤 온도가 평평해지면 판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이 값을 보고 맞추면 어떻게 되는데요.”

젊은 관제사가 물었다.

“한 시간쯤 뒤에 온도가 평평해지면서 판이 제자리로 돌아와. 그런데 자네는 이미 그만큼 반대로 밀어 놨잖아. 그러면 2배로 틀어져.”

팀장이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그걸 또 맞추겠지. 그러면 오후에 또 틀어져. 하루 종일 온도를 쫓아다니게 돼. 거울은 한 번도 안 건드렸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40분을 기다렸다. 그동안 관제실에서는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화면의 값은 여전히 흘렀고, 흐르는 값을 보면서 손을 대지 않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40분이 지나자 값의 흐름이 잦아들었다. 저절로였다. 그제야 남은 어긋남은 처음의 오분의 일이었고, 그 오분의 일만이 진짜 거울의 값이었다. 관제사가 그것만 접어 넣었다. 격자 82차, 간격 0.1밀리미터. 송전 누적 1488시간, 62일째 끊김 없음.

기록에는 이렇게 남았다. 기다림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지금 재면 잘못 잴 것을 알기에, 바르게 잴 수 있는 순간까지 손을 대지 않는 일이다. 급한 손은 언제나 자기가 만든 흔들림을 쫓아다닌다.

6. 흙 밑의 시계

물주기는 김지수 차례였다.

옮겨 심은 화분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처졌던 잎은 다 들렸고, 새로 난 잎 하나가 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 옆에 나란히 묻어 둔 씨앗 둘이었다. 열이레가 지나도록 흙 위로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거 죽은 거 아니에요?”

진우가 흙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 번만 살짝 파 보면 안 됩니까. 썩었으면 다시 심게요.”

“파 보시면 그게 끝이에요.”

김지수가 물뿌리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방금 나기 시작한 뿌리는 머리카락보다 가늘어요. 손이 닿으면 그 자리에서 끊겨요. 확인하는 순간에 없던 일이 돼요.”

“그럼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씨앗마다 제 시계가 있어요.”

김지수가 말했다.

“물이랑 온도가 맞아도 바로 안 나요. 안에서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요. 굳어 있던 양분을 잘게 풀어서 쓸 수 있게 바꾸는 일이요. 그게 끝나야 뿌리가 나요. 겉에서 보기엔 열이레 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 같지만, 흙 밑에서는 열이레 내내 일이 있었어요.”

진우는 흙 위를 다시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화분 가장자리 쪽 흙에 아주 가느다란 실금 하나가 가 있는 것을 보았다. 손톱만큼도 안 되는 금이었다. 무엇이 밀어 올린 흔적인지, 그냥 물이 마르며 갈라진 자국인지 알 수 없었다.

진우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왔다. 진우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현수였다.

생각해 볼게요.

네 글자였다. 진우는 그 화면을 한참 보다가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다.

“뭐래요?”

김지수가 물뿌리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생각해 보겠답니다.”

진우가 말했다.

“결국 오늘도 아무것도 안 정해졌어요.”

“그게 제일 좋은 답인데요.”

김지수가 말했다.

진우가 그를 보았다.

“예라고 왔으면 아버님이 오늘부터 그날까지 아드님 마음이 변할까 봐 조마조마하셨을 거예요. 아니오라고 왔으면 오늘로 끝이고요. 생각해 보겠다는 건 아직 안 정했다는 뜻이잖아요. 아직 안 정했다는 건, 진짜로 정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다는 뜻이에요. 5년 동안 아드님이 아버님 일로 마음을 쓴 날이 오늘 말고 몇 날이나 됐겠어요.”

진우는 창밖을 보았다. 5년 동안 날짜를 세던 종이는 서랍에 그대로 있었다. 요즘은 세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하루 종일 손이 그 서랍 쪽으로 갔다.

“이번엔 얼마나 걸릴까요.”

진우가 물었다.

“모르죠. 근데 재촉하지 마세요.”

김지수가 화분에 마지막으로 물을 얇게 부었다.

“흙 파 보는 거랑 똑같아요. 아버님이 한 번 더 물으시면 아드님은 그날로 답을 내야 해요. 그러면 아직 덜 자란 답이 나와요. 덜 자란 답은 대체로 아니오예요. 정하지 못한 사람은 일단 안 하는 쪽으로 정하거든요.”

그날 밤 명호는 발사대에서 통제실로 돌아오는 길에 걸음을 멈추고 위를 보았다. 세워 놓은 발사체가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 불도 깜빡이지 않았다. 손댈 데가 없어서 조용한 것이었다.

그 위로 고리가 지나갔다. 저 고리는 지금도 제 길을 돌고 있고, 엿새 뒤 어느 순간에 딱 14초 동안 이 자리 위를 지날 것이다. 그 14초를 만들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끝나 있었다.

기다림은 비어 있는 시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굳고, 풀리고, 평평해지고, 뿌리가 내린다. 밖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아직 대답이 오지 않은 물음도, 아직 올라오지 않은 씨앗도, 아직 열리지 않은 14초도, 지금 각자의 흙 밑에서 자기 시계를 돌리고 있었다.

진우는 서랍을 열지 않고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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