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새벽] 제147화 - 떼어냄

제147화 「떼어냄」

1. 9초

화면 속에서 로켓이 발사대를 떠났는데 통제실은 조용했다.

인턴이 자기 귀를 의심하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20명이 화면을 보고 있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화면 안의 불꽃은 이미 발사대 아래를 하얗게 지우고 있었다.

“안 들립니다.”

인턴이 말했다.

“3킬로미터야.”

명호가 말했다.

“소리는 1초에 340미터를 가. 9초 뒤에 와.”

9초는 길었다. 그 사이에 로켓은 이미 탑 꼭대기를 지나 있었다.

그리고 유리창이 떨렸다. 소리라기보다 몸통 안쪽을 누가 손바닥으로 미는 것 같은 느낌이 먼저 왔고, 그다음에 낮고 두꺼운 소리가 따라왔다. 책상 위의 종이컵 안에서 물이 동그랗게 흔들렸다.

인턴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보는 거랑 듣는 거 사이에 9초가 있어.”

명호가 말했다.

“저건 이미 저기 없어. 지금 우리한테 오는 소리는 9초 전에 저 자리에 있던 거야.”

기상 담당관은 화면을 보지 않고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고도별 구름 두께와 지상에 깔아 둔 전기장 측정기 26대의 값이 떠 있었다.

“티 플러스 30초부터 셉니다.”

담당관이 말했다.

“고도 2킬로미터에서 2.6킬로미터 사이에 층적운이 한 겹 있습니다.”

“뇌우 없다면서.”

인턴이 물었다.

“뇌우는 없어.”

담당관이 말했다.

“오늘 문제는 하늘이 만드는 번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번개야.”

인턴이 담당관을 보았다.

“저 배기 기둥은 뜨겁고 이온이 많아. 전기가 통해. 로켓 몸통까지 합치면 저건 지금 길이가 수백 미터짜리 쇠막대야. 원래 대기 안에 전기가 조금 쌓여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번개가 안 될 정도였다고 쳐. 거기에 저런 걸 하나 꽂으면 끝에서 전기장이 몰려. 없던 번개가 생겨.”

“실제로 있었습니까.”

“아폴로 12호.”

담당관이 말했다.

“티 플러스 36초에 한 번, 52초에 한 번 맞았어. 그날 뇌우 경보는 없었어. 그 번개는 로켓이 만들었어.”

“그럼 오늘은 왜 통과시켰습니까.”

“저 구름은 두께가 600미터고 꼭대기가 영 도 층 밑에 있어.”

담당관이 말했다.

“구름 안에서 전기가 갈라져 쌓이려면 얼음 알갱이하고 물방울이 섞여서 서로 부딪쳐야 돼. 얼음이 없는 구름은 전기를 못 모아. 그리고 지상 측정기 26대가 전부 미터당 1킬로볼트 아래야. 그래서 저 구름은 그냥 물이야.”

티 플러스 36초에 아무 일도 없었다.

티 플러스 52초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

“지났습니다.”

담당관이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손을 책상에서 뗐다.

2. 제일 눌리는 데

“티 플러스 65초. 접근 중.”

유도 담당이 말했다.

화면에 숫자 하나가 커지고 있었다. 로켓이 지금 공기한테 맞고 있는 힘이었다. 인턴이 그 숫자를 보다가 옆을 돌아보았다.

“이게 제일 빠른 자리입니까.”

“아니.”

명호가 말했다.

“제일 높은 자리도 아니야. 곱해서 제일 큰 자리야.”

“곱한다고요.”

“위로 갈수록 빨라지지. 그런데 위로 갈수록 공기는 얇아져. 이 둘을 곱한 게 몸통이 맞는 힘이야. 하나는 계속 커지고 하나는 계속 작아지니까 어딘가에 곱해서 제일 큰 자리가 하나 생겨. 대략 11킬로미터, 시각으로는 지금이야.”

“티 플러스 72초.”

숫자가 꼭대기에 닿았다. 그리고 곧바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순간에 다른 숫자가 내려갔다. 엔진 출력이었다.

“지금 줄입니까?”

인턴이 놀라서 물었다.

“제일 힘든 데에서 줄이는 겁니까?”

“제일 힘든 데니까 줄이는 거야.”

명호가 말했다.

“여기서 더 밟으면 빨라지고, 빨라지면 저 숫자가 더 커져. 지금 20초 동안 아끼는 힘은 나중에 공기 없는 데서 다 돌려받아. 공기 있는 데서 급하게 굴 이유가 없어.”

명호는 다른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받음각이었다. 로켓 몸통이 실제로 지나가는 방향과 몸통이 향한 방향 사이의 각도였다.

0.8도.

“바람이 육십팔인데 각도가 일 도가 안 됩니까.”

유도 담당이 말했다.

“미리 눕혔으니까.”

명호가 말했다.

“새벽에 잰 값을 넣어서 만든 경로야. 저 고도에서 옆에서 저만큼 밀 걸 알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몸을 미리 조금 기울여 놓은 거야. 각도가 벌어지면 옆에서 눌리는 힘이 그 각도만큼 커져. 나란해지면 삼분의 이로 줄어.”

“실측 나왔습니다.”

관제사가 말했다.

“몸통 굽힘 하중, 예측 대비 104퍼센트. 한계의 81퍼센트입니다.”

통제실 어딘가에서 누가 숨을 뱉는 소리가 났다.

팀장이 벽 쪽을 한 번 보았다. 23줄이 적힌 종이가 거기 붙어 있었다. 일곱째 줄에 초속 70미터라고 적혀 있었고, 오늘 새벽에 잰 값은 육십팔이었고, 지금 지나간 자리에서 몸통이 받은 힘은 한계의 81퍼센트였다.

“바람은 못 고쳐.”

팀장이 말했다.

“그 속을 지나가는 길은 고칠 수 있고.”

명호는 대답하지 않고 숫자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6시간 동안 통제실에서 있었던 일 중에 제일 조용한 20초였다.

3. 떼어냄

“티 플러스 2분 40초. 일 단 연소 종료.”

숫자가 한꺼번에 내려앉았다.

가속도가 영에 가까워졌다. 화면 위쪽에서 뻗어 나가던 불꽃 자리가 비었다. 인턴이 화면 쪽으로 반걸음 다가섰다.

“꺼졌습니다.”

“꺼야 돼.”

명호가 말했다.

“지금부터 몇 초 동안은 아무도 아무것도 안 해.”

“아무것도 안 합니까.”

“이 몇 초가 있어야 떼어져.”

명호가 말했다.

“힘이 남아 있는 채로 떼면 뒤엣것이 앞엣것을 들이받아. 밀고 있는 채로 손을 놓는 거랑 같아. 먼저 힘을 다 빼고, 그다음에 떼.”

화면에 새로운 항목이 떴다. 분리.

명호가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볼트 끊김. 하단 역추진 넷 점화. 상단 얼리지 둘 점화.”

“2개가 다 켜집니까.”

인턴이 물었다.

“떼어내는 건 미는 게 아니야.”

명호가 말했다.

“밀면 하나만 움직이고 그 반동으로 다른 하나가 따라와. 그래서 아래것은 아래것대로 뒤로 조금 가고, 위엣것은 위엣것대로 앞으로 조금 가. 각자 제 쪽으로 가는 거야. 그래야 다시 안 닿아.”

“위에 붙은 건 왜 켭니까. 어차피 곧 본 엔진 켤 텐데요.”

“안에 있는 게 떠 있거든.”

명호가 말했다.

“지금 무중력이야. 탱크 안에 액체가 둥둥 떠 있어. 그 상태로 펌프를 돌리면 기체를 빨아들여. 앞으로 살짝 밀어 주면 안에 있는 게 뒤쪽 바닥으로 가라앉아. 그다음에 켜는 거야.”

화면에 거리 숫자가 떴다. 1.2미터. 2.9미터. 5.4미터.

“떨어졌습니다.”

관제사가 말했다.

명호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보고 있었다. 4초가 지났다. 8.8미터. 13미터. 18미터.

“떨어졌는데 왜 더 봅니까.”

인턴이 물었다.

“떨어진 건 1초면 알아.”

명호가 말했다.

“안 돌아오는 건 4초를 봐야 알아. 이 일에서 제일 위험한 건 안 떨어지는 게 아니라 떨어졌다가 다시 닿는 거야. 확인 항목이 떨어짐이 아니라 다시 안 닿음인 이유가 그거야.”

18미터에서 숫자가 멈추지 않고 계속 늘었다.

“이 단 점화. 정상.”

그리고 그때 젊은 관제사가 자기 화면을 보다가 손을 들었다. 아침 6시 호명에서 별표 항목을 읽겠다고 일어섰던 사람이었다.

“제 항목이 없어졌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3번 밸브 몸통 온도. 화면에 안 뜹니다.”

“일 단이랑 같이 떨어졌어.”

팀장이 말했다.

관제사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밸브는 지금 저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야. 바다에 떨어질 거고, 몸통 온도는 이제 아무 데도 안 적혀.”

팀장이 그 앞으로 걸어갔다.

“이틀 전 아침에 자네가 그 말을 안 했으면 오늘 아침 6시에 그 값을 볼 사람이 없었고, 11시 6분에 밸브를 여는 사람도 없었어. 5시간 40분 동안 그 값을 본 사람은 자네 하나야. 이제 그 값은 세상에 없어.”

관제사가 종이 시각표를 폈다. 그 줄을 찾아서 연필로 한 줄을 그었다. 지운 게 아니라 그은 것이었다. 그 아래에 시각을 적었다. 11시 48분 52초.

“티 플러스 3분 20초. 페어링 분리.”

화물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 두 쪽이 좌우로 열려서 떨어져 나갔다.

“저건 왜 지금 뗍니까.”

인턴이 물었다.

“저것도 무겁습니까.”

“무거운 것도 무거운 건데, 그것보다 이제 할 일이 끝났어.”

명호가 말했다.

“저건 공기 때문에 씌우는 거야. 아래쪽 빠른 데를 지날 때 화물 겉이 공기하고 부딪쳐서 뜨거워지거든. 지금 고도에서는 공기가 거의 없어. 화물 겉이 받는 열이 기준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이 있어. 그 순간이 오면 떼는 거야.”

“조금 더 씌워 두면 안 됩니까.”

“그러면 저 무게를 끝까지 지고 가야 돼.”

팀장이 뒤에서 말했다.

“일찍 떼면 안에 있는 게 상하고, 늦게 떼면 그만큼 못 가. 감싸는 게 일이었던 게 아니야. 감싸야 할 동안이 있었던 거야.”

4. 11시 반

산에는 바람이 없었다.

진우와 현수가 나란히 계단을 올라갔다. 진우는 그 계단이 몇 개인지 알았다. 5년 동안 혼자 세면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세지 않았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숫자를 안 세게 된다는 걸 진우는 처음 알았다.

현수는 9시부터 여기 있었다. 2시간 반이었다.

자리에 도착했을 때 거기는 이미 정리가 되어 있었다. 마른 잎이 치워져 있었고 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진우가 가져온 수건은 쓸 데가 없었다.

현수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버지도 뭐 말씀하세요.”

진우가 아들을 돌아보았다.

“저는 아까 다 했어요.”

현수가 말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서 아래쪽을 보고 섰다.

진우는 한참 서 있었다. 5년 동안 여기 와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온 것 자체가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약 먹고 있어.”

진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자기 것 같지 않았다.

“그해에는 안 먹었어. 그다음 해에도 안 먹었고. 2년쯤 지나서 다시 다니기 시작했어. 지금은 아침에 하나 먹어.”

바람이 없어서 목소리가 멀리 안 갔다. 몇 발짝 앞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 같았다.

“현수는 잘 있어.”

진우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9시에 왔다더라. 나보다 2시간 반 먼저 왔어.”

말이 끊겼다. 진우는 다음 말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찾아지지 않는 말이 있었고, 그건 오늘 할 말이 아니었다.

“늦었어.”

진우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는 게 늦었어.”

내려오는 길에 현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현수가 화면을 보고 껐다.

“발사요.”

현수가 말했다.

“알림을 켜 놨었는데. 이따 봐도 돼요.”

“봐도 된다.”

진우가 말했다.

현수가 진우를 한 번 보고 화면을 다시 켰다. 둘이 계단 중간에 서서 작은 화면을 같이 보았다. 소리는 켜지 않았다. 하얀 것이 아주 느리게 위로 갔고 아래에 하얀 것이 넓게 퍼졌다.

진우는 그것을 보면서 아들의 어깨가 자기 어깨 옆에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5년 동안 같은 방향을 보고 서 본 적이 없었다.

화면 안에서 한 덩어리가 뒤로 떨어져 나갔다. 진우는 그게 뭔지 몰랐다. 현수도 몰랐던 것 같았다.

“떨어졌는데요.”

현수가 말했다.

“그러게.”

진우가 말했다.

“괜찮은 거겠지.”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데 15분이 걸렸다. 차 문 앞에서 현수가 잠깐 서 있다가 말했다.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

“그래.”

진우가 말했다. 다른 말은 붙이지 않았다.

오늘 진우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5년을 세던 종이는 부엌 벽에 붙어 있었고, 거기 적힌 시각 3개는 오늘 아침에 다 지나갔다. 종이가 할 일은 아침에 끝나 있었다.

5. 각자의 낮

소율은 라디오를 켜 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일 단 분리 확인. 정상.”

소리가 방 안에 작게 깔렸다. 조금 뒤에 같은 목소리가 페어링 분리 확인이라고 말했다. 소율은 분리라는 말을 두 번 들었고, 그때마다 그다음에 정상이라는 말이 붙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왔다가 간 아홉째 마디가 오늘 다시 왔다. 어제 것하고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가운데가 조금 낮았다.

소율은 8마디를 처음부터 쳐 보았다. 그리고 아홉째를 붙였다.

안 붙었다.

다시 쳤다. 또 안 붙었다. 아홉째 자리에서 손이 갈 데가 없어서 그냥 멎었다.

세 번째로 칠 때 소율은 앞의 2마디를 빼고 세 번째 마디부터 시작했다.

붙었다.

소율은 손을 무릎에 내려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앞의 2마디는 나흘 전 밤에 처음 나온 것이었다. 열흘 동안 아무것도 없다가 그날 오른손이 처음 듣는 2마디를 짚었고, 그 뒤에 나온 6마디는 전부 그 2마디를 늘이고 줄이고 뒤집어서 나온 것이었다.

그게 지금 앞에 있어서 다음으로 안 갔다.

소율이 종이를 꺼냈다. 앞의 2마디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 옆에 줄을 하나 긋고 그 아래부터 6마디를 다시 적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홉째 마디를 적었다.

적으면서 소율은 어제 자기가 한 말을 생각했다. 적으면 그 한 번이 정답이 되고 나머지는 안 온다고 했었다.

“두 번 왔으니까요.”

소율이 혼잣말을 했다.

“두 번 온 건 적어도 돼요.”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소율은 듣지 않았다. 다만 아까 들은 말이 하나 남아 있었다. 다 쓴 것은 뒤에 붙어 있어도 계속 무게가 된다고, 그런 말이었던 것 같았다.

같은 시각에 동현은 서랍을 열고 있었다.

검은 파일철 하나가 거기 있었다. 10년 동안 만든 것이었다. 부서별 담당자 이름과 직통 번호, 서류가 어느 순서로 돌아야 안 막히는지, 어떤 경우에 예외를 쓰는지, 그 예외를 누가 승인해 주는지가 다 적혀 있었다. 회사 어디에도 이런 게 없었다. 동현 말고는 아무도 이걸 통째로 가진 사람이 없었다.

동현은 그것을 들고 부장에게 갔다.

“이거 없애겠습니다.”

부장이 안경을 올렸다.

“그거 자네 10년이야.”

“10년이 남는 게 아니라 10년이 붙어 있는 겁니다.”

동현이 말했다.

“이게 저한테 통째로 있으니까 사람들이 계속 저한테 옵니다. 지난주에 제가 없어도 되게 됐다고 하셨는데, 이게 여기 있는 한은 아닙니다.”

“버리면 그 안에 든 게 없어지잖아.”

“안 버립니다.”

동현이 말했다.

“여섯으로 나눠서 각 부서에 자기 몫만 보내겠습니다. 3층 건 3층으로, 6층 건 6층으로. 자기 것만 가지고 있으면 그건 그 사람 일이 됩니다. 통째로 가진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건 계속 그 사람 일이 됩니다.”

부장이 파일철을 받아서 한 장을 넘겨 보았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자네 이거 없으면 뭐 하나.”

“연차 씁니다.”

부장이 웃었다.

동현은 자리로 돌아와서 파일철을 여섯 묶음으로 나누었다. 나누다 보니 어디에도 안 들어가는 종이가 몇 장 남았다. 그건 부서 일이 아니라 동현이 사람들 성격을 적어 둔 것이었다. 누가 전화보다 메일을 좋아하고 누가 오전에 물으면 잘 대답하는지 같은 것이었다.

그건 나눠 보내지 않고 버렸다.

흐름표에 동현이 적었다.

오늘 한 일, 여섯으로 나눠 보냄.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통째로 가진 게 하나도 안 남음.

서랍 안쪽에는 손수건이 접힌 채로 그대로 있었다. 오늘도 펴지 않았다.

6. 낮춤

오후에 ATLAS 관제실로 값이 넘어왔다.

“이 단 연소 종료. 티 플러스 9분 20초. 궤도 진입 확인.”

관제사가 숫자를 읽다가 얼굴을 들었다.

“낮은데요.”

“낮게 넣었어.”

팀장이 말했다.

“고리보다 120킬로미터 아래야.”

“어차피 올려야 하는데 왜 낮게 넣습니까. 처음부터 우리 높이로 넣으면 옆으로만 조금 옮기면 되잖습니까.”

“그러면 영영 못 와.”

팀장이 말했다.

“같은 높이에 있으면 같은 속도로 돌아. 앞에 있는 걸 따라잡으려고 밟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빨라진 만큼 궤도가 높아져. 높은 데는 한 바퀴가 더 길고 더 느려. 밟았는데 뒤로 가.”

관제사가 잠깐 말이 없었다.

“여기선 서두르면 뒤로 가.”

팀장이 말했다.

“앞서려면 낮아져야 돼. 낮은 데는 한 바퀴가 짧아서 그냥 돌기만 해도 앞서 나가. 오늘 저걸 120킬로미터 아래에 넣은 건 저걸 우리보다 빨리 돌게 하려고 그런 거야.”

“얼마나 걸립니까.”

“하루에 열몇 도씩 앞서. 사흘이면 우리가 비워 둔 자리 앞에 딱 서.”

“그때 올립니까.”

“그때 올려. 그때는 옆으로 갈 필요가 없어. 위로만 가면 돼. 자리는 이미 거기 있으니까.”

관제사가 화면을 넘겼다. 80장의 거울이 어제보다 3분씩 좁혀진 간격으로 돌고 있었고, 한 군데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는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사흘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새것은 그 아래에서 혼자 돌고 있었다. 고리에 속하지 않은 채로, 고리보다 빠르게.

격자는 86번째에도 십 분의 1밀리미터를 지켰다. 지상으로 내려보낸 전력은 1656시간째였다. 69일.

관제사가 흐름표에 적었다.

오늘 한 일, 낮은 데로 보냄.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사흘 동안은 우리 것이 아님.

저녁에 진우가 집에 돌아왔을 때 김지수가 와 있었다.

오늘은 김지수 차례였다. 24일째였다. 첫 번째 화분의 싹은 떡잎 2장 사이가 조금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아주 작은 것이 하나 서 있었다. 떡잎이 아닌 잎이었다.

두 번째 화분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진우가 물뿌리개를 건네다가 멈췄다.

“이거.”

진우가 말했다.

“여기 흙이 조금 올라온 것 같은데요.”

김지수가 몸을 숙이고 보았다. 화분 가장자리에서 손가락 하나쯤 안쪽에, 흙이 아주 조금 도톰해진 자리가 있었다. 그림자가 없으면 안 보일 정도였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김지수가 말했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파 보면 압니다.”

진우가 말했다. 말해 놓고 진우가 웃었다.

“안 팝니다.”

“내일 보면 알아요.”

김지수가 말했다.

“오늘은 몰라도 되는 날이에요.”

진우는 두 화분에 나누어 물을 주었다. 두 번째 것에도 똑같이 주었다. 아침에도 그랬고 저녁에도 그랬다.

다 쓴 것은 무거워서 떼는 것이 아니다. 무게만이라면 그냥 지고 갈 수도 있다. 문제는 뒤에 붙어 있는 것이 무게가 아니라 방향을 먹는다는 데 있다. 붙어 있는 동안 그것은 계속 이쪽을 자기 쪽으로 조금씩 당기고, 돌아누우려 할 때마다 한 박자씩 늦게 만든다. 그래서 떼어내는 일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의 문제가 된다. 다 쓰기 전에 떼면 못 가고, 다 쓰고도 안 떼면 그다음이 없다.

그리고 떼어내는 일은 미는 일이 아니다. 미는 것은 반동으로 다시 닿게 한다. 각자 제 쪽으로 조금씩 가야 다시 안 닿는다. 떨어진 것은 1초면 알고, 다시 안 오는 것은 몇 초를 더 봐야 안다. 그 몇 초를 견디는 일이 떼어냄의 전부다.

떨어져 나간 것은 뒤에서 혼자 내려간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거기까지가 그것의 일이었다.

80장이 비워 둔 자리는 오늘도 비어 있었다.

사흘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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