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새벽] 제146화 - 놓음

제146화 「놓음」
1. 잰 값
새벽 3시에 기구가 올라갔다.
흰 풍선이 손을 떠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밑에 매달린 상자는 어른 주먹만 했다. 그 안에 온도계와 습도계와 위치를 알려 주는 부품이 들어 있었고, 그것이 초속 5미터로 올라가면서 2분에 한 번씩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래로 보냈다.
“바람은 어떻게 잽니까?”
인턴이 물었다. 어젯밤부터 집에 안 간 얼굴이었다.
“기구는 바람을 안 재. 자기 위치만 보내.”
기상 담당관이 말했다.
“2분 전에 여기 있었는데 지금은 저기 있다, 그 차이가 그 높이의 바람이야. 기구는 바람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그냥 실려 가거든. 실려 간 거리가 곧 바람 세기야.”
“그럼 한 번만 띄우면 되는 거 아닙니까.”
“세 번 띄워.”
담당관이 말했다.
“한 번 띄우면 그건 그 풍선이 지나간 길의 바람이야. 옆으로 2킬로미터만 떨어져도 다를 수 있어. 그러니까 세 번 띄워서 세 값이 서로 비슷하면 그날 하늘이 고른 거고, 세 값이 제각각이면 값이 문제가 아니라 그날 대기가 뒤집혀 있다는 뜻이야. 그러면 잰 값을 아예 못 써.”
세 번째 기구가 고도 11킬로미터를 지난 것은 4시 2분이었다.
담당관이 숫자 3개를 화면에 띄웠다. 66, 68, 67.
“셋이 붙어 있습니다. 오늘 하늘은 고릅니다.”
담당관이 말했다.
“다만 예보보다 셉니다. 어제 예보가 65였는데 실제로는 67에서 육십팔입니다. 제일 센 값으로 68을 씁니다.”
통제실이 조용해졌다.
명호는 벽을 보았다. 석 달 전에 적어 붙여 놓은 종이가 거기 있었다. 23줄. 어제 누군가 일곱째 줄을 고치자고 했고 팀장이 안 고쳤다. 종이 아래에는 어제 날짜만 하나 적혀 있었다.
일곱째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도 11킬로미터 상층풍 초속 70미터 이하.
“2미터 남았습니다.”
관제사가 말했다.
“통과입니다.”
팀장이 종이 앞으로 걸어가서 한참 서 있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말했다.
“어제 저 줄을 75로 넓혔으면 오늘 68은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였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통과한 거야. 어제 저걸 고쳤으면 오늘 우리는 통과한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간 거고.”
경로 재계산은 4시 40분에 끝났다. 예정보다 20분 늦었다. 새벽에 잰 값을 넣어서 오늘 아침 하루치 비행 경로를 다시 만드는 일이었다. 바람이 세지면 몸통을 조금 더 눕혀서 바람과 나란해지게 하고, 그러면 옆에서 눌리는 힘이 삼분의 이로 줄어든다.
“20분 늦었는데 괜찮습니까.”
인턴이 물었다.
“시각표 안에 늦을 자리가 있어.”
명호가 말했다.
“오늘은 그 자리를 얼마나 아껴 쓰느냐가 일이야.”
2. 비움
같은 시각, 궤도에서는 80장의 거울이 85번째 정렬에 들어갔다.
지상에서 관제사가 화면을 넘겼다. 오늘 아침에 새것이 하나 올라온다. 그것이 올라오면 고리는 81장이 된다.
“어디에 끼웁니까?”
관제사가 물었다.
“어디에도 못 끼워.”
팀장이 말했다.
“지금 자리가 없어. 80장이 딱 맞게 벌어져 있거든.”
“그럼 오늘 올라오는 건 어디로 갑니까.”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야.”
팀장이 말했다.
“올라오는 건 우리가 원하는 자리에 안 떨어져. 로켓은 높이를 만들어 주는 거지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야. 오늘 올라온 건 오늘 저 아래 어딘가에 있을 거고, 우리 자리까지 오는 데 사흘 걸려.”
“사흘요?”
“낮은 데가 더 빨라.”
팀장이 말했다.
“낮은 궤도는 한 바퀴 도는 데 시간이 덜 걸려. 그러니까 새것을 일부러 조금 낮은 데 두고 며칠 돌리면 그게 우리보다 앞서 나가. 앞으로 가야 할 만큼 앞서 나갔을 때 위로 올려서 고리에 끼우는 거야. 지름길이 없어. 기다려서 따라잡는 것밖에 없어.”
“그럼 오늘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자리를 비워 두는 거.”
80장이 고리 위에 고르게 벌어져 있었다. 사이가 4도 30분씩이었다. 여기에 한 장을 더 넣으려면 어딘가는 좁아져야 했다.
“한 장만 옆으로 밀면 안 됩니까. 나머지는 그대로 두고.”
“그러면 그 옆이 좁아지고 그 옆의 옆은 그대로야. 고리 하나에 좁은 데가 생겨.”
팀장이 말했다.
“80장을 다 조금씩 옮겨. 다 옮기고 나면 사이가 4도 27분으로 좁아져. 한 장씩 보면 3분밖에 안 되는데, 80장이 3분씩 내놓으면 그게 모여서 한 자리가 돼.”
관제사가 계산을 했다. 80장을 각각 아주 조금씩 미는 일이었다. 한 장이 옮기는 양은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양이었다.
“그런데 이거, 사흘 동안은 어떻게 됩니까.”
관제사가 물었다.
“자리는 비워 놨는데 채울 게 아직 안 왔으면, 그 사흘 동안 고리는 한 군데가 뚫린 채로 도는 거잖습니까. 지금이 제일 잘 맞는 상태인데 일부러 흐트러뜨리는 겁니다.”
“맞아.”
팀장이 말했다.
“비워 두는 동안은 손해야. 사흘 내내 손해고, 그동안 아무한테도 좋은 일이 없어.”
팀장이 잠깐 멈췄다.
“자리는 남는 데 생기는 게 아니야. 있던 것들이 조금씩 물러나야 생겨. 그리고 물러나는 건 언제나 채워지기 전에 해야 돼. 다 온 다음에 비키려고 하면 그때는 낄 데가 없어서 못 들어와.”
격자는 85번째에도 십 분의 1밀리미터를 지켰다. 지상으로 내려보낸 전력은 1632시간째였다. 68일.
관제사가 흐름표에 적었다. 오늘 한 일, 80장을 조금씩 밀어서 한 자리를 비움.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오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음.
3. 부르는 자리
6시에 마지막 호명이 있었다.
계통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고 또는 노 고를 말한다. 대답하지 않으면 노 고로 적는다. 어제 팀장이 그렇게 정했다.
“추진.”
“고.”
“유도.”
“고.”
“전력.”
“고.”
여섯 번째에서 팀장이 종이를 보았다. 그 줄에는 별표가 하나 붙어 있었다.
“3번 밸브 몸통 온도. 읽을 사람.”
“제가 읽습니다.”
이틀 전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 일어섰다. 그날 규정 안인데도 굳이 말했던 젊은 관제사였다.
“현재 하한에서 0.2도 남았습니다. 이틀 전 이 시각에는 0.4도였습니다.”
“줄고 있다는 거지.”
“네. 탱크에 액체산소가 차 있으니까 그 옆 배관 몸통이 계속 식습니다. 지금 속도로 보면 11시쯤 하한에 닿습니다.”
통제실이 조용해졌다. 발사는 11시 46분이었다.
“규정 안입니까.”
팀장이 물었다.
“지금은 안입니다. 발사 시각에는 아닐 겁니다.”
“방법.”
“두 가지 있습니다.”
관제사가 말했다.
“보온재를 한 겹 더 감는 게 하나인데, 지금 사람을 저기 보낼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발사 40분 전에 그 밸브를 잠깐 열어서 안에 있는 걸 조금 흘려보내는 겁니다. 흐르면 몸통 온도가 올라옵니다. 계산으로는 0.9도까지 회복됩니다.”
“쓰던 방법입니까.”
“시각표에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오늘 처음 씁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쓰고, 열고 나서 3분 뒤에 다시 읽어. 회복이 안 되면 그때는 홀드야.”
호명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명호가 팀장 옆에 섰다.
“이틀 전에 저 항목에 별표를 안 달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규정 안이었으니까 아무도 안 봤겠지.”
팀장이 말했다.
“오늘 아침 6시에 저 값을 볼 사람이 없었을 거야. 그리고 11시에 그 값이 하한을 넘었을 때 처음 봤겠지. 그러면 그때는 방법을 고르는 게 아니라 홀드밖에 없어.”
6시 40분에 대형 표시 화면 3장 중 가운데 한 장이 꺼졌다.
계통 전원을 예비 쪽으로 넘기는 중이었고 그때 화면을 그리는 서버 하나가 같이 넘어가지 못했다. 복구에 25분이 걸린다고 했다.
가운데 화면에는 오늘 하루의 시각표가 떠 있었다.
통제실 안에서 열몇 사람이 동시에 자기 앞을 보았다. 어제 저녁에 나눠 준 종이가 거기 있었다. 발사 당일 시각표. 한 장짜리였다.
“화면은 꺼지면 없어져.”
팀장이 어제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를 돌렸다. 내일 아침에 제일 먼저 안 되는 게 화면이라고.
명호는 종이를 펼쳤다. 종이 위의 시각표는 화면이 꺼진 것과 아무 상관 없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4시 40분 경로 올림, 6시 호명, 11시 6분 밸브 열기, 11시 46분 발사.
25분 동안 아무도 뛰지 않았다.
4. 9시
진우는 8시 반부터 부엌에 서 있었다.
벽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5년을 세던 종이였다. 앞면에 2줄이 있었고 그 아래에 어제 적은 시각 3개가 있었다.
9시. 11시. 11시 반.
9시가 되었다.
지금쯤 아들이 도착했을 것이다. 차로 50분 거리였고 오늘은 평일이니까 길이 막히지 않았을 것이다. 진우는 그 자리를 알았다. 5년 동안 혼자 갔던 자리였고 어느 계단이 몇 개인지도 알았다.
10시 반쯤에 근처 주차장까지만 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
어제 그러지 않겠다고 정했다. 정한 사람은 어제의 자기였다. 오늘 아침의 자기는 그 결정을 다시 하고 싶어 했다.
진우는 종이를 보았다. 종이는 어제 자기가 쓴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지수였다. 문자 한 줄이었다.
종이 보세요.
진우가 답을 썼다.
보고 있습니다.
창턱으로 갔다. 오늘은 진우 차례였다.
첫 번째 화분에서 싹이 목을 펴고 서 있었다. 그제 아침까지만 해도 고리처럼 굽어 있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펴졌고, 김지수 말대로 다시 굽지 않았다. 떡잎 2장이 벌어져 있었고 색이 하루 사이에 진해져 있었다.
두 번째 화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3일째였다.
진우는 물뿌리개를 들고 두 화분에 나누어 주었다. 두 번째 것에도 똑같이 주었다.
주면서 어제 김지수가 한 말을 생각했다. 안 나면 그때 가서 알면 된다고, 지금 정하면 정한 다음부터는 안 보게 된다고.
오늘 아침에 진우가 참는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10시 반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고 하나는 이 화분에 아무것도 없다고 정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둘이 같은 것이라는 걸 진우는 물을 주면서 알았다. 둘 다 아직 안 온 것을 먼저 끝내 버리려는 손이었다.
10시 40분에 진우는 집을 나섰다.
나가기 전에 종이를 한 번 더 보았다. 벽에서 떼지 않았다. 오늘 저녁에 돌아와서도 그게 거기 있을 것이었다.
5. 각자의 오전
소율은 아침에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있었다.
오늘 발사가 있다고 했다. 아나운서가 시각을 말하고 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아침에 갈 수 있는 시간은 14초라고.
소율이 손을 멈췄다.
14초 안에 못 올라가면 오늘은 못 간다고 했다. 지구가 도는 각도와 저 위에 있는 고리가 놓인 방향이 딱 겹치는 순간이 그것뿐이라고. 그 14초를 놓치면 하루를 더 기다린다고.
엿새째였다.
2마디에서 자란 8마디가 아직 닫히지 않은 채로 있었다. 한 번만 더 뒤집으면 닫힌다는 걸 알고 있었고 닷새 동안 그 손을 내려놓았다.
오늘 아침에 아홉째 마디가 왔다.
손이 저절로 짚었고 소리가 났고 그게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소율은 그것을 적지 않았다. 녹음도 하지 않았다.
같이 하는 건반이 물었다.
“방금 그거 좋았는데 왜 안 적어요.”
“적으면 그게 아홉째 마디가 돼요.”
소율이 말했다.
“아직은 왔다 간 거예요. 왔다 가는 건 몇 번 더 와요. 그런데 적으면 그때부터는 그 한 번이 정답이 되고 나머지는 안 와요.”
“저쪽은 14초 안에 못 가면 하루를 더 기다린대요.”
건반이 라디오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부러워요.”
소율이 말했다.
“저건 끝이 언제 오는지가 정해져 있잖아요. 14초. 저기 있는 사람들은 오늘 그 시각까지 준비하면 되는 거예요. 저는 언제 오는지를 몰라요. 그래서 안 닫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소율은 그날 8마디를 8마디인 채로 두었다.
같은 시각 동현은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열이틀째였다. 어제 부장이 2주를 안 채우고 끝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시험 기간도 아니었다.
책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3층과 6층이 서로 직접 연락하고 있었고, 서류는 동현을 지나가지 않고 처리되고 있었다. 아침에 두 번 창을 열어 보았지만 동현 앞으로 온 것은 없었다.
11시쯤 사무실 안쪽 화면에 중계가 떴다. 누가 틀었는지는 몰랐다. 사람들이 하나둘 그 앞에 섰다.
동현도 그 앞에 섰다.
10년 동안 근무 시간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화면을 본 적이 없었다. 10년 동안 이 사무실에서 뭔가 재밌는 게 있으면 동현은 그때 제일 바빴다.
부장이 옆에 와서 섰다.
“자네 저런 거 보는 사람 아니잖아.”
“오늘은 볼 게 있습니다.”
동현이 말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서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10년 만에 처음 쓰는 서식이었다. 며칠을 쓸지 칸이 비어 있었다.
이틀이라고 적었다가 지우고 나흘이라고 적었다.
부장한테 가져갔더니 부장이 그것만 보고 말했다.
“더 써.”
동현은 흐름표를 펼쳤다. 매일 오늘 한 일을 적던 종이였다. 어제는 오늘 한 일이 없어도 되게 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 칸에 동현은 이렇게 적었다.
오늘 한 일, 봄.
그리고 흐름표를 접어서 손수건 옆에 넣었다. 손수건은 어제 접은 그대로였고 오늘은 펴지 않았다.
6. 11시 46분
진우가 관리사무소 앞에 선 것이 11시 27분이었다.
3분을 기다렸다. 11시 반에 현수가 위쪽 길에서 걸어 내려왔다.
2시간 반 동안 혼자 있었던 얼굴이었다. 눈이 부어 있었고 그것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진우는 왜 따로 갔느냐고 묻지 않았다. 어제 그러지 않겠다고 정했다.
“오셨어요.”
현수가 말했다.
“그래.”
두 사람이 잠깐 서 있었다.
“많이 얘기했어요.”
진우가 묻기 전에 현수가 말했다.
“엄마한테.”
“그래.”
진우가 말했다. 그리고 다른 말을 붙이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대기실에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소리가 조금 새어 나왔다. 발사를 중계하고 있었고 화면 구석에서 숫자가 줄고 있었다.
발사장에서는 그보다 조금 앞서, 11시 25분에 홀드가 걸려 있었다.
해상 안전구역 안에 배가 한 척 들어와 있었다. 23줄 종이의 열아홉째 줄이었다. 발사 안전구역 해상에 선박이 없을 것.
“어선입니다. 무선 응답했고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몇 분.”
“11분 걸립니다.”
팀장이 시각표를 보았다. 내장 홀드가 15분 있었다. 일정 밖으로 새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같은 날에 남한테서 빼앗지 않으려고 미리 떼어 둔 자기 몫이었다.
“내장 홀드 쓴다. 11분.”
팀장이 말했다.
“4분 남습니다.”
“4분이면 남은 거야.”
배가 구역을 벗어난 것이 11시 36분이었다. 카운트다운이 다시 흘렀다.
오늘 아침 갈 수 있는 시간은 11시 46분 정각부터 14초였다.
11시 45분 12초에 사람 손이 시각표를 떠났다.
마지막 1분은 사람이 하지 않는다. 사람이 손으로 하기에는 순서가 너무 촘촘하고, 하나가 십 분의 1초씩만 늦어도 그다음이 전부 어긋난다. 그래서 마지막 1분은 미리 적어 둔 순서대로 기계가 혼자 한다. 그 1분 동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멈추는 것 하나뿐이다.
“자동 시퀀스.”
“자동 시퀀스 진입.”
명호는 손을 무릎 위에 두었다. 오늘 명호의 손이 할 일은 없었다.
16초 전에 물이 쏟아졌다.
발사대 밑으로 수십만 리터가 한꺼번에 부어졌다. 그것은 불을 끄려는 물이 아니었다. 소리를 죽이려는 물이었다. 엔진이 켜지면 그 소리가 발사대 콘크리트에 부딪혀 되돌아오고, 되돌아온 소리가 아직 안 떠난 로켓의 옆구리를 때린다. 소리가 자기 자신을 두들겨서 부순다. 그래서 물을 부어 그 소리를 먹인다.
3초 전에 엔진이 켜졌다.
로켓은 그때도 발사대에 붙어 있었다. 밑동을 볼트가 붙잡고 있었다.
“켜는 거랑 놓는 거는 다른 일이야.”
명호가 어제 인턴에게 그렇게 말했다.
“켜고 나서 3초 동안 힘이 다 올라오는 걸 봐. 4개가 다 제 힘을 내고 있는지, 하나만 덜 나오지는 않는지. 그거 다 보고 나서 놓는 거야. 그동안은 붙잡고 있어.”
“안 올라오면요?”
“안 놓고 꺼.”
붙잡고 있는 3초 동안 로켓은 자기 힘으로 올라가려고 하면서 볼트에 매달려 있었다. 그 3초가 오늘 아침에 제일 위험한 시간이었고, 제일 필요한 시간이었다.
11시 46분 12초에 볼트가 풀렸다.
붙잡고 있던 것이 놓았다.
발사체가 자기 김을 뚫고 올라갔다. 소리는 몇 초 뒤에 왔다. 통제실 유리가 낮게 떨렸고 그다음에 배 속에서 울렸다.
명호는 그것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벽에는 여전히 23줄이 붙어 있었다. 오늘 아침에 그중 2줄이 실제로 일을 했다. 일곱째 줄은 통과시켰고 열아홉째 줄은 11분을 세웠다.
관리사무소 앞에서 현수가 유리문 쪽을 잠깐 보았다.
“저거 오늘이었네요.”
“그렇구나.”
진우가 말했다.
두 사람은 그 앞에 서서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진우가 먼저 위쪽 길로 몸을 돌렸다.
“올라가자.”
현수가 옆에서 걸었다. 나란히 걸은 것은 5년 만이었다.
진우 주머니에는 오늘 아무것도 없었다. 종이는 부엌 벽에 붙어 있었고, 2줄은 진작에 외우고 있었고, 오늘은 그중 하나도 쓸 일이 없었다. 아들이 먼저 말했기 때문이었다.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붙잡고 있는 것은 대개 옳다. 힘이 다 올라올 때까지 붙잡아야 하고, 넷 중에 하나가 덜 나오면 놓지 말고 꺼야 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데 걸리는 3초는 아까워도 반드시 써야 하는 3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붙잡는 법을 오래 배운다. 붙잡는 것이 성실이고 책임이고 사랑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붙잡고만 있으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발사대의 물건이다.
놓는 일은 켜는 일과 다른 일이다. 켜는 데는 힘이 들고 놓는 데는 힘이 들지 않는다. 놓는 데 드는 것은 힘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 올라온 걸 확인했으면 이제 내 손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여기서부터는 저것이 저 혼자 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한 번 놓은 것은 다시 잡을 수 없다.
11시 46분 12초였다.